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문단 편집) === 클럽 === [[CA 리버 플레이트]]와 [[CA 보카 주니어스]]를 거쳐, 199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함께 득점왕을 차지하며 세계의 명문구단들의 주목을 받았다. 바티가 택한 팀은 [[세리에 A]]의 [[ACF 피오렌티나]].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후이 코스타&가브리엘 바티스투타.png|width=100%]]}}} || || {{{#ffffff '''자신의 영혼의 파트너였던 [[후이 코스타|{{{#fff 후이 코스타}}}]]와 함께''' }}} || 이적 첫 시즌에 13골을 기록하며 순조롭게 리그에 적응했고, 이후 줄곧 절정의 골 결정력을 보인다. 26골로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한 적도 있지만, 오랜 세월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오히려 1993년 팀이 [[세리에 B]]로 강등당하기 까지 했다. 당연히 여타 명문팀에서 유혹이 따랐지만, 바티스투타는 피오렌티나를 위해서 모든 이적 제의를 거절하고 세리에 B에서 16골을 넣어 다음해 피오렌티나의 재승격을 이끌었다. 피오렌티나 시절 특히 주목할 만한 기록은 [[세리에 A]] [[제이미 바디|11경기 연속골]]. 이 당시 감독이 바로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또한 1999년에는 [[FIFA 올해의 선수]] 3위를 기록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바티스투타가 남긴 훈훈한 미담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1990년대 후반 [[세리에 A]]는 이른바 칠공주시대였다.[* AC 밀란, 인테르, 유벤투스, AS 로마, 라치오, 피오렌티나, 파르마] 일곱 팀이 한발만 삐끗해도 우승권에서 멀어지는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고, 피오렌티나도 그중 한 팀이었다. 하지만 끝내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고, 결국 피오렌티나는 재정 문제로 팀의 간판이었던 바티스투타와 후이 코스타를 떠나보낸다. 바티스투타는 2000년 [[AS 로마]]로 이적해[* 이적료가 약 400억원으로, 당시 축구 역사상 두번째로 높은 이적료였다. 노쇠화가 시작될 나이인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금액이다.], 00-01 시즌을 치룬다. 이 시즌 [[AS 로마]]는 피오렌티나와 벌인 경기에서 1:0으로 이겼는데, 결승골을 넣은 선수가 바로 바티스투타였다. 평상시 [[기관총]]을 난사하는 골 셀러브레이션으로 유명했지만, 이날 만큼은 골을 넣고 멍하니 서서 눈물을 흘렸다. 이날 한 신문은 그라운드의 마지막 로맨티시스트란 찬사를 바쳤고, 바티스투타가 흘린 눈물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었다. 국내축구든 해외축구든 이적 문제를 놓고 온갖 잡음을 일으켜 끝내 팬들이 뒷목을 잡게 만드는 사태에 비한다면 실로 동화같은 이야기다. 후에 포포투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른 리그에서 오퍼가 왔음에도 피오렌티나와 맞붙게 될 로마로 이적을 택한 이유를 밝혔는데 당시 오퍼가 왔던 맨유는 자신의 힘이 아니더라도 우승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로마라면 자신의 힘으로 우승을 시켜줄수 있기에 로마를 선택하였다고 밝혔다. 피오렌티나의 재정문제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가는데 우승컵 하나쯤은 제대로 들어보고 싶었고 이미 트레블을 달성한 세계적 강팀이었던 맨유보다는 북부팀에 줄곧 밀려온 언더독 로마에 더 마음이 갔다는 이야기. [[ACF 피오렌티나|피오렌티나]]에서는 자신과 [[후이 코스타]] 만으로는 더 이상 무리라고 생각했었기에 떠났다고 밝혔다. 강등된 후에도 팀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전성기를 온전히 바쳤음에도 우승하지 못했으니 그런 생각이 들만하다.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바티스투타가 우승한 그 시즌. 피오렌티나는 천문학적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며 무너져 [[7공주(축구용어)|7공주]]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첫번째 주자가 되었다.[* 2번은 2002년 구단주가 회계조작으로 구속된 라치오, 3번은 2003년 모기업이 파산한 파르마. 3팀 모두 눈앞의 성적만 보고 방만한 재정운용을 한 대가를 처절하게 치렀다. 그나마 피오렌티나와 라치오는 팀을 추슬러 최악의 사태는 면했지만 칠공주 시절에도 가장 약했던 파르마는 사기꾼 구단주 만나 한번 더 파산하고 세리에D로 굴러떨어져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이러한 사연을 뒤로 하고 바티스투타는 20골을 기록하며 [[AS 로마]]의 2000-01 시즌 리그 우승[* 구단 역사상 3번째이며, 또 한 명의 위대한 스타 [[프란체스코 토티]]의 유일한 리그 우승이다.]을 견인해낸다. 그러나 우승컵을 든 그해 그는 이미 32세의 노장이었다. 노쇠화와 부상 문제로 인해 다음 시즌엔 6골밖에 기록하지 못하고 이듬해인 02-03시즌에 4골을 기록하던 시즌 중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 2골을 추가하는데 그친다.[* 당시 세대교체의 일환으로 [[카푸]]도 [[AC 밀란]]으로 보내고 만다.] 결국 2003년 유럽 생활을 정리하고 카타르의 알 아라비 클럽으로 이적했다. 이적한 첫해 18경기 25골을 기록해 카타르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다음 시즌 3경기만을 뛴 채 2005년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는 축구 관련 일에서 모두 손을 떼고,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호주]] 이민 이후 현재까지 [[퍼스]]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